두 남아공 할머니
이젠 5단계 격리다.
개학하며 학교 갈 줄 알았던 애들이 각각의 방에서 컴퓨터로 온라인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가만히 있으라니 오기가 나서일까?
크리스마스 동안 내내 궁금했던 두 할머니들을 찾아갔다. 한분은 호주로 이민간 친구의 시어머니셨다. 항상 11월에 호주에 가셨다가 2월말에 영국으로 돌아오시는데, 올해는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셨다.
또 한분은 남아공에서 오신 분인데, 영국남자와 선상에서 만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결혼을 하신 분이다. 젊은 시절의 모습도 영화배우 뼘치는 미모셨다. 그러나 결혼 20주년이 되자 남편이 이만큼 한 여자랑 살았으면 충분하다며 이혼하자 했단다.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딸둘을 잘 키워 대학보내고 결혼까지 시키고 손주들도 있다. 어쩌다 전남편과 그의 현아내를 모임에서 마주치기도 한단다.
암튼 이 할머니는 아직도 쓰린 가슴을 품고 사시는 것 같다. 남들과도 쉽게 어울리시지 않고 언제나 조용하시다. 그러나...
나만 만나시면 얘기가 끝이 없으시다. 남아공의 역사, 학교 다니던 얘기, 남편을 만난 이야기, 아이들을 낳고 키운 이야기, 가족들과 사돈의 팔촌까지 이어지는 가족 이야기, 집에서 키우던 개나 고양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요리까지 20년동안 못한 이야기를 내게 쏟아놓으시는것 같다.
항상 1시간 정도 지나면 가야한다고 말을 꺼내면, 알았다하시며 또 다른주제의 이야기를 시작하시고 내가 일어서면 부엌으로 가셔서 잼 한병이라도 주시려 하신다.
오늘은 아예 문전에서 들어가면 안되는거라 못을 박았다. 그래도 커피라도 마시고 가라해서 가든에서 커피를 마시자 했다. 사실은 가든도 들어가면 안되는거다. 그러나 설마 경찰이 나를 잡아가겠는가?
할머니는 이제 가든에서 나무 하나, 꽃 하나, 새 하나까지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한시간은 거뜬히 시간을 보냈다. 이젠 서서히 추워지기 시작했다. 마음같아서는 실컷 할머니 이야기를 더 들어드리고 싶다. 그러나 아직은 코로나의 위염이 맹위를 떨치니 서로 조심하는게 맞는거다.
할머니의 가든.
목련(magnolia)이 벌써 꽃봉오리가 생겼다. 할머니 나이만큼 오래된 나무다. 가끔 찾아오는 비둘기와 여러 새들. 곳곳에 솟아나는 새싹들. 모두 할머니의 숨결같다. 그리고 할머니는 내게 화분 하나를 주셨다. Lockdown이 아니더라도 할머니를 자주 찾아뵈야겠다.